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문단 편집) === [[마지막 생존자|최후의 생존자 3인]] === [[파일:attachment/sampng1.jpg]] [youtube(SKMMkYBDamI)]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최후의 생존자 3인 - 유지환, 최명석, 박승현. * 유지환(여, 1977년생, 서울 [[위례상업고등학교]] 졸업, 사고 당시 18세, 현재 [age(1977-01-01)]세, 사고 발생 13일 만에 구조) 지하 1층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매몰됐다. 누운 상태에서 옴싹달싹 못하는 가운데 붕괴된 콘크리트가 점점 내려와 얼굴과 맞닿은 상황까지 왔으나 극적으로 구조됐다. 같이 매몰된 동료 직원들과 대화를 하며 버텼으나 시간이 지나자 자신 혼자만 살아있었다고 증언했다. 구조 후에 상당히 유쾌한 모습을 보였는데 구조된 직후의 소감으로 "구조대원 오빠랑 데이트하고 싶다.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약간 엉뚱한 말을 해서 소소하게 웃음을 남기기도 했다. 결혼 후에 조용히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후 2021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에 생존자 중 한 사람으로 출연하여 그날의 비극을 다시 전하기도 했다. 가명처리가 되지 않고 본명 그대로 출연한 드문 사례.[* 다만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블러처리한 것으로 볼 때, 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 최명석(남, 1975년생, 사고 당시 20세, 현재 [age(1975-01-01)]세, 사고 발생 11일 만에 구조) 상당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는데, 차차 구조 열기가 식어가면서 물도 뿌리지 않아 갈증에 시달리던 중 장대비가 쏟아져 빗물을 마셔 연명할 수 있었고, 그 다음 날 [[에스컬레이터]]를 철거하던 중에 굴착기 기사가 발견하였다. 삼풍백화점에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였으며, 하청 직원으로 파견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구조 뒤 콜라를 먹고 싶다고 해 두산그룹이 곧바로 [[코카콜라]] 40박스를 보내거나 LG건설 구자욱관리담당 부사장(53)등 임원진 3명이 최군이 입원중인 서울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을 찾아와 학비전액 지원과 졸업후 이 회사 취직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1995071002201|#]], [[https://imnews.imbc.com/replay/1995/nwdesk/article/1956167_30705.html|#]],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5/07/11/1995071173901.html|#]]] [[광주서석고등학교]]에서 [[한문교사]]로 재직했던 최모 교사(최명석의 삼촌)의 언급에 따르면, 구조 이후에는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원래는 군면제였지만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https://www.yna.co.kr/view/AKR20150626016600004|기사]]에서도 언급된다.] 이후 다른 생존자 박승현의 고교동창을 소개받아 결혼했으며,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 [[GS건설]]에 재직 중이다. 답답하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는 동안 자기 주변에 떨어져 있던 [[장난감 기차]]를 발견하고는 이를 가지고 놀면서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말이 가지고 노는 거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고통을 잊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하게 해준 물건이었을 것이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5/07/10/1995071073901.html|기사]]] 그의 옆에는 2명의 여성도 갇혀 있어서 같이 살아나가자고 서로를 위로했지만 25세 직원 이승연과 다른 1명의 중년 여성은 콘크리트에 깔려 부상이 심해 모두 목숨을 잃었다. 훗날 사고 당시의 일을 술회했는데, 매몰되어 있느라 깜깜해서 보이는 게 없었기에 자신의 기억은 청각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어서, 얘기도 나누고 서로서로 힘내라고 응원도 했지만 '''점점 그 소리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전술한 소방수 때문에 익사한 사람의 마지막 말을 들었는데, 그의 유언은 "물이 차올라와요...허리까지 찼어요...그쪽은 꼭 살아 나가세요..안녕."이었고 그 다음엔 '꼬르륵, 꼬르륵' 물속에서 사람이 숨이 막혀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 소리는 평생 못 잊을 거라고..일반인과 함께 외국을 여행하는 형식의 어느 TV프로그램에 [[이스라엘]] 지역 여행자로 섭외되어 출연한 적이 있는데, 주변 지인들을 테러나 전쟁으로 여럿 잃은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현지 청년이 '나는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산다'고 말하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말하더니 그날 밤 프로그램 PD에게 들려준 이야기다.(출처: 김형민, <접속 1990>) * 박승현(여, 1976년생, 서울 [[성덕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사고 당시 19세, 현재 [age(1976-01-01)]세, 사고 발생 17일 만에 구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가장 마지막에 생존자로 구출된 인물. 박승현 양이 구출되기 전까지 국내 매몰사고 최장 생존기록은 15일 8시간을 기록한 [[1967년]] 청양 구봉광산 매몰사고의 김창선 씨였다. 그러나 김씨는 외부 연락이 가능했던 반면[* 매몰 지점에 광산 전화가 있었고, 다행히 전화선이 두절되지 않았다.] 박승현은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고립 상태에서 17일(정확히는 377시간)간 생존했고 따라서 국내 매몰사고 생존기록을 경신했다.[* 참고로 극한 상황에서 최장 생존기록 세계 1위는 1979년 오스트리아의 18세 청년 Andreas Mihavecz가 세운 18일이다. 이 청년은 교통사고를 내고 경찰서 지하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는데, 경찰관들이 깜빡 잊고 이 청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가 18일 만에 구출되면서 세운 기록이라 한다.] 사고 직후 [[근로복지공단]]에 특채되어 '삼풍 참사 최후의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산업재해 지원을 담당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IMF 사태]] 때문에 계약직으로 전환당하면서 2000년부터 그만두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030161|2005년 근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